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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서쪽, 서촌 골목길을 걷다

서촌은 경복궁 서쪽 마을을 부르는 별칭으로, 청운효자동과 사직동 일대를 일컫는다. 행정동인 청운효자동은 효자동 · 창성동 · 통인동 · 누상동 · 누하동 · 옥인동 · 청운동 · 신교동 · 궁정동 등 9개의 법정동을 포괄한다. 작은 골목을 돌아 나왔을 뿐인데 동네 이름이 휙 바뀌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촌 산책길엔 목적지를 따로 설정하지 않아도 좋다. 실핏줄처럼 뻗어나간 작은 골목들을 어슬렁거리다 보면, 뜻하지 않은 즐거움을 만날 수 있다. 한옥과 빌라, 자그마한 세탁소와 갤러리가 나란히 이웃한 이 동네에선 조선시대로부터 20세기까지의 시간여행이 가능하다.
글과 사진 고우정 자유기고가

서촌 골목길,
추억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골목 산책 1번지

타이틀 문양
서촌 골목길 한옥 사진
사대부 집권 세력의 거주지였던 북촌과 달리 서촌은 조선시대 역관이나 의관 등 전문직 중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그러가하면 인왕산 자락이 명승지로 유명해 권문세가들이 별장을 지어 풍류를 즐기기도 했다. 옥계시사(백일장)가 열리고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추사 김정희의 명필이 탄생한 곳이자, 근대에는 이중섭, 윤동주, 노천명, 이상 등이 거주하며 문화예술의 맥을 이었다. 660여 채의 한옥과 재래시장, 근대문화유산과 더불어 갤러리, 카페, 공방 등이 어우러진 서촌은 추억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골목 산책의 1번지다.
서촌 골목길 한옥 사진
서촌 산책길에 참고할 만한 코스는 다음과 같다. 경복궁역 4번 출구에서 시작되는 ‘예술산책길’은 이곳의 랜드마크인 통의동 백송 터를 비롯, 경복궁 돌담 옆 골목 사이에 자리한 30여 개의 갤러리와 공방을 둘러 볼 수 있는 코스다. 대림미술관, 류가헌, 보안여관 등 오래된 한옥이나 근대 건물을 개보수한 카페와 문화공간이 모여 있다. 높이 16m로 우리나라 백송 중 가장 크고 수형이 아름다워 1962년에 천연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었던 통의동 백송은 1990년 태풍으로 쓰러져 지금은 밑동만 남아 있다. 백송 터는 추사 김정희가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경복궁 영추문 앞에 자리한 보안여관은 1930년대 서정주 시인이 하숙하면서 김동리, 오장환, 김달진 등과 <시인부락>이라는 문학동인지를 만들었던 곳으로, 지금은 미술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통인시장,
6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시장

타이틀 문양
통인 전통시장 사진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시작되는 ‘옛 추억길’은 1960~1970년대 서울의 모습을 간직한 골목이다. 문화공간으로 거듭난 작가 이상의 집을 지나 서촌의 터줏대감인 대오서점, 기름 떡볶이, 도시락 카페 등으로 인기몰이 중인 통인시장 등을 둘러 볼 수 있다. 서촌을 60여 년간 지키고 있는 대오서점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이다. 근래에는 헌책방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카페도 함께 운영 중이다. 아날로그적 감성을 사랑하는 이들의 필수 코스로, 가수 아이유의 <꽃갈피> 앨범 재킷 배경으로 더욱 유명세를 치렀다. 통인시장은 6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시장이다. 서촌은 조선시대부터 민가가 밀집해 있던 곳으로, 4대문 안에 있는 유일한 골목형 시장이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전통시장 스케치 경복궁역 1번 출구에서 시작되는 ‘골목여행길’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골목인 체부동을 중심으로 걷는 코스로, 소박한 삶의 풍경이 오롯하다. 금천교 시장을 지나 1910년대 전통한옥의 원형을 간직한 체부동 홍종문 가옥(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29호)과 시인 노천명 가옥, 백사 이항복의 집터인 필운대 등을 만나볼 수 있다. 1961년 문을 연 금천교 시장은 300m 남짓한 골목길 안에 형성된 서민형 골목시장으로, 최근 ‘제2의 피맛골’이라는 별칭으로 통할 만큼 퇴근길 직장인들의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중장년층이 즐겨 찾는 허름하지만 내공 있는 맛집과 더불어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하우스맥주와 사케 집 등이 이웃하고 있어, 밤마다 불야성을 이루는 핫 플레이스다. 착한 가격에 맛깔난 전과 국수류를 맛볼 수 있는 ‘체부동잔치집’, 산지에서 당일 공급된 신선한 해물로 소문난 ‘계단집’, 쭈꾸미 맛집 ‘만선’, 청년장사꾼들의 시원시원한 서비스가 돋보이는 ‘열정감자’ 등이 유명하다.

수성동 계곡,
수려한 경관으로
시인묵객 불러 모아

타이틀 문양
수성동 계곡 사진
수성동 계곡 상점 사진 ‘하늘풍경길’은 옥인동 박노수 가옥과 윤동주 하숙집 터, 한옥 갤러리 겸 게스트하우스 서촌재를 지나 인왕산 수성동 계곡으로 이르는 산책길이다. 가는 길 내내 아기자기한 카페와 상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종로구립미술관으로 거듭난 박노수 가옥은 故남정 박노수 화백이 2011년까지 거주했던 곳으로 남정의 기증 작품과 컬렉션(고미술품, 수석, 고가구)을 만나 볼 수 있다. 1937년에 지어진 한,양 절충식 가옥의 독특한 건축미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수성동 계곡은 누상동과 옥인동 경계에 위치한 인왕산 아래 첫 계곡이다. 크고 맑은 물소리로 유명해 조선시대에 ‘수성동(水聲洞)’으로 불렸다 전해지며, 여기서 ‘동’은 행정구역 개념이 아닌 ‘계곡, 골짜기’를 뜻한다. 예부터 도성 내 여름 휴양지로 명성이 자자했던 수성동 계곡은 수려한 경관으로 시인묵객들을 꽤나 불러들였던 모양이다. 북악산과 인왕산의 경승 8경을 담은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 중 한 폭이 이곳의 풍광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추사 김정희는 ‘수성동 우중에 폭포를 구경하다’란 시로 계곡의 시원한 물소리를 예찬한 바 있다.
수성동 돌다리 사진
계곡의 길이는 200m 남짓하며 하류에 옛 모습을 간직한 돌다리가 하나 남아 있다. ‘기린교’라 불리는 이 돌다리는 도성 내에서 유일하게 원 위치에 원형 보존된 돌다리이자 통 돌로 만든 제일 긴 다리로, 겸재 정선의 그림에도 등장한다. 계곡과 돌다리는 서울시 기념물 제31호로 지정돼 있다. 정선의 화폭 속에서 소요하는 조선의 선비와 2015년 오늘의 내가 하나로 겹쳐지는 경험이 가능한 곳. 자연과 도심,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수성동 계곡에서 찍는 서촌 산책의 마침표는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