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THEME II

사랑 차단하고 삭제하고 내려받기 sns시대의 연애법

글. 이형석 헤럴드경제 기자

이별, 톡

서양에서는 연애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고 잠적해 버리는 것을 ‘고스팅(ghosting)’이라고 이른다. 유령처럼 사라진다는 뜻이다. 이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던 것은 2014년 6~7월쯤이었다. 할리우드 여배우인 셜리즈 테론이 과거 약혼자였던 손 펜과의 사이에서 일어났던 일이 알려지면서다. 당시 숀 펜이 셜리즈 테론의 연락을 갑자기 받지 않고 ‘고스팅’했다고 한다.

이후 이 단어는 젊은이들의 연애 세태를 상징하는 말이 됐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 타임스는 2015년 소셜미디어 부문의 올해의 단어로 이 단어를 선정했다. 같은 해 미국 온라인 사전 사이트 딕셔너리 닷컴은 신조어 300개 중 하나로 고스팅을 추가했다. 유명 사전인 콜린스 또한 2015년에 표제어로 등록했다.

요즘 대개의 ‘고스팅’은 카톡처럼 모바일, 온라인 상에서 일어난다. 실제로 최근 한 결혼정보회사가 20~30대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44.2%가 가장 선호하는 이별 통보의 방법으로 문자나 카톡을 들었다. 육성으로 전하는 전화 통화 이별 방식은 그 다음인 23.9%였다. 직접 얼굴을 보고 이별을 고한다는 응답자는 19.8%에 그쳤다. 문자나 카톡마저도 하지 않고 무작정 ‘잠수를 탄다’는 의견은 9.4%였다.

사랑, 확률

존 쿠삭과 케이트 베킨세일이 주연한 2000년 작 ‘세런디피티(Serendipity, 한국 개봉명 ‘세렌디피티’)’라는 영화가 있었다. 각자 연인이 있는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나 크리스마스 이브, 뉴욕의 한 가게에서 마지막 남은 장갑 한 켤레를 동시에 잡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각자의 연인에게 줄 크리스마스선물을 사러 들린 가게, 딱 하나 남은 물건을 동시에 집다니 이런 기막힌 만남이 있을까? 두 사람은 저녁을 같이 보내고 헤어지게 되는데, 남자가 전화번호를 묻자 여인은 재회를 운명에 맡기자고 한다. 남자는 연락처가 적힌 지폐로 솜사탕을 사먹고, 여자는 책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은 뒤 헌책방에 판다. 지폐가 세상 뭇사람들을 돌고 돌아 여자에게 이르거나, 책이 여러 주인을 거쳐 남자의 손에 들어오면 두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두 사람은 다시 만나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 그 확률은 어느 정도일까?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비행기 옆 좌석에 앉은 여인에게 반한 주인공은 자신이 상대를 만날 수 있었던 확률을 계산해보고 5840.82분의 1이라고 한다. 이 확률을 적용한다면 ‘세런디피티’의 두 남녀가 다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은 다시 몇 제곱수가 될 것이다. 극히 희박하다.

‘세런디피티’는 우연으로 얻은 뜻밖의 기쁨이나 행운을 뜻하는 단어다. 같은 제목의 영화는 사랑의 우연이 빚어내는 낭만성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세런디피티’도 있다. 몇 해 전에 MIT 인간역학 연구진은 매력적인 데이트 상대가 10미터 안에 들어오면 알려주는 휴대용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프로그램의 이름이 ‘세런디피티’이다.

연애란, 대개 극히 희박한 확률의 만남으로 시작해 ‘취향’의 탐색과 게임으로 발전하고 결혼에 이르거나 이별을 하거나 ‘운명’으로 끝맺는다. 이제 연애가 가진 확률과 취향의 게임은 앱으로 대체되고, 운명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혹은 메신저의 영역이 된다.

사랑, 앱

국내외에서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데이트 앱’을 이용한 만남이 인기를 끌고 있다. 데이트 앱은 이용자들이 직업이나 외모, 나이 등이 기록된 프로필을 보고 서로 호감이 가는 상대방에게 메신저 등을 통해 연락할 수 있도록 한 어플리케이션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보편적인 데이트 수단으로 자리 잡았으며 국내에서도 빠르게 이용자가 늘고 있다. 국내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0% 정도의 젊은 세대들이 데이트 앱을 이용한 ‘소셜데이팅’을 선호했다.
소셜데이팅을 위한 앱과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신탭이라는 앱은 술집에 설치한 안면 인식 카메라를 통해 바나 클럽 안에 있는 손님들의 인원수, 성비, 연령대 등을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서비스를 한다. 이미 지난 2011년부터 미국의 바와 식당 수십 곳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앱을 이용하면 어느 클럽의 ‘물’이 좋은 지 실시간으로 찾아보고 갈 곳을 정할 수 있다. 이 회사는 안면 인식 카메라를 통해 술집 손님의 인종, 키, 몸무게, 매력, 머리 색, 의상 유형 등에 관한 정보도 전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데이트 앱의 인기는 두 가지 요소에 기반한다. 하나는 폭넓은 선택지다. 마치 백화점이나 인터넷쇼핑몰에서의 쇼핑처럼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의 갯수가 무궁무진하다. 연애가 더 많은 상품 중에서 구매 가능한 쇼핑 같은 행위가 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맞춤형으로 상대를 고를 수 있다. 상대의 외모와 재산, 학력, 직업, 취향 등 모든 것을 고를 수 있다. 많은 결혼 정보회사나 데이트 앱 개발회사는 이용자들의 정보에 기반해 짝짓기를 해주는데, 이 매칭이 향후에는 점점 더 정교하고 정확해질 수 있다.

지난 2013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연구를 진행했는데, 미국의 페이스북 이용자 5만8천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특정 메시지에 대해 어떤 사람이 클릭한 페이스북의 ‘좋아요’ 정보만을 가지고도 그 사람의 인종, 나이, 지능지수, 성적 선호, 성격, 약물사용, 정치적 성향 등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이러한 빅데이터 기술과 가까운 거리에서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는 근거리통신기술, 안면 인식 카메라 등이 조합될 경우 우리의 연애는 더욱 온라인 쇼핑을 닮아갈 것이다. 점점 더 많은 상품 중에서 고를 수 있고, 내 맘에 쏙 드는 물건을 찾을 수 있으며, 선택한 상품은 더 정확하게 배송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이별이란 단지 ‘구매 취소’나 ‘반송’의 의미에 더 가깝게 될 것이다. 한 줄짜리 이별통보, 차단, 삭제…. 이별은 점점 더 쉬워지고 있다.

연애의 투명성,
사랑의 불투과성

이제 우연이나 운명 따위에 사랑의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 실패한 연애의 대가를 빚만 남은 카드와 허송세월한 시간으로 치를 필요도 없다. 더 많은 결혼정보회사들이 이제는 더 많은 데이터를 더 정교한 컴퓨터의 분석으로 각 개인에게 맞는 짝을 매칭시킨다.
당신은 몰라도, 당신이 행복할 수 있는 상대, 당신의 취향을 만족시켜줄 상대를 이미 컴퓨터와 네트워크는 알고 있다는 말이다.
사물인터넷과 빅데이터의 시대다. 당신은 센서로 감지되고 네트워크로 전송돼, 수집되고 저장되며 분석되는 데이터의 집합, 수의 묶음으로 표현된다. 연애나 사랑 또한 마찬가지이다. 기기 혹은 신체에 내장된 센서로 파악된 데이터, 그리고 소득, 인종, 나이, 학력, 지역 등 각종 프로필이나 웹경로로 추적된 취향, 그리고 신체의 변화 수치 등 당신의 정보를 통해 당신은 당신에게 맞는 데이터의 집합체, 곧 최적의 연애 상대를 만날 수 있다. 결국 연애나 사랑이란 데이터 집합체간의 ‘매칭’ 에 불과해졌다. 연애 실패로 치르는 비용이 적어지는 만큼, 이 데이터간 짝짓기는 쉽게 업로드ㆍ다운로드 그리고 삭제될 수 있다.

이제 우리의 연애는 한없이 투명에 가까워지고 있다. 인간에겐 스스로도 파악할 수 없는, 영원한 어둠 속에 숨겨진 자아가 있다. 인간의 인식이 명쾌하게 닿을 수 없는, 이성의 빛이 밝힐 수 없는 미지의 자아가 늘, 누구에게나 존재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사랑에 대해서도 우리는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해왔던 것이다. 때론 믿었던 사랑에 배반당하고 때론 몰랐던 사랑에 희열을 맛봤던 것이다. 이제 그 기회는 갈수록 줄어든다. 편리함과 정확성, 예측 가능성. 투명한 모든 것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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